[영혼의 도서관, 나무와 숲 (41)] 동홍동 음식점 뜰에 있는 오래된 당유자

음식점 마당에 있는 오래된 당유자 나무(사진=장태욱 기자)
음식점 마당에 있는 오래된 당유자 나무(사진=장태욱 기자)

동홍동에 가끔 가는 음식점이 있다. ‘오리나라 닭마을’인데, 오래된 가정집을 고쳐서 토종닭과 토종오리 백숙을 판다. 종업원도 없고 사장님 혼자 장사를 한다. 백숙 요리에 1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미리 예약한 손님만 받는다.

이 집에 가면 우선 오래된 가정집이 주는 아늑함이 좋다. 현대식으로 장식하지 않아 실내 분위기가 소박한데, 식탁에 오르는 반찬도 예스럽고 정갈하다. 게다가 마당 한가운데 있는 당유자 나무, 이건 오래된 주택의 화룡점정(畵龍點睛)과도 같다.

당유자는 오래전부터 제주섬에 자생하는 귤 품종이다. 열매가 큰데, 가을에 누렇게 익어가는 모습이 탐스러워 오래전부터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충암 김정은 중종 14년(1519)에 조광조와 함께 기묘사화에 연루돼 금산에 유배됐다가 이듬해 제주도로 이배됐다. 그는 조카가 서신으로 제주도의 풍토와 물산에 대해 묻자 상세한 기록으로 답했다. 충암의 답신은 훗날 『제주풍토록』이라는 이름으로 간행됐다.

충암은 서신에서 제주도의 귤 품종을 금귤·유감·동정귤·청귤·산귤·감자·유자·당유자·왜귤 9가지라고 소개했다. 특히 당유자에 대해 열매의 크기는 모과와 같고 맛은 유자와 비슷한데, 거대한 열매가 매달려 누렇게 드리운 것은 진기할 만하다고 했다.

1777년 정조시해 기도에 억울하게 연루돼 제주에 유배됐던 정헌 조정철은 『정헌영해처감록』에 ‘당유자는 흡사 남자의 모습이어서 아리땁거나 어여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신 기운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비교하자면 호걸스런 인사나 시와 술을 좋아하는 나그네다. 바람과 서리의 계절이 지나 정초 즈음에 이르게 되면 껍질은 점점 떠서 두꺼워지고 맛은 더욱 상큼해진다’고 했다.

이처럼 당유자는 옛 선비들의 사랑을 받은 과일이다. 압도적인 크기와 개성 있는 모양, 노랗게 익은 채 겨울을 나는 기풍이 사람의 눈을 사로잡았다.

당유자 열매가 가을 햇볕을 받고 이어간다. 당유자는 열매가 크고 탐스럽기 때문에 옛 선비의 사랑을 받았다.(사진=장태욱 기자)
당유자 열매가 가을 햇볕을 받고 이어간다. 당유자는 열매가 크고 탐스럽기 때문에 옛 선비의 사랑을 받았다.(사진=장태욱 기자)

당유자는 제주도에 자생종인 만큼, 이곳의 풍토와 잘 맞는다. 특별히 나무에 살충제를 자주 뿌리지 않아도 잘 자라는 편이다. 게다가 누가 감기에 걸렸을 때 당유자를 먹으면 낫는다고 해서, 옛사람들은 약에 쓰려고 집 근처에 한 그루씩 키우기도 했다.

제주사람들은 당유자를 ‘뎅유지’라고 부른다. 봄날 오일장에 가면 어김없이 뎅유지를 파는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 뎅유지 나무가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는데, 여전히 약재로 찾는 사람이 있다.

음식점으로 쓰는 집과 당유자 나무는 모두 동홍동 군위오씨 집안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영란 씨(71)는 오래전 오 씨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와 이처럼 오래된 것들을 가꾸고 돌보게 됐다.

김영란 대표는 “이 집은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를 거쳐 우리 부부에게 왔다”라며 “100년도 넘은 집인데, 고쳐가며 쓰고 있다. 고치다 보니 오히려 새집처럼 돼서 계속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시집온 지 49년인데, 시집올 때도 마당에 있는 당유자 나무는 꽤 큰 상태였다”라며 “지금은 아마도 120년은 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음식점 뜰에는 분재와 수석이 가득하다.(사진=장태욱 기자)
음식점 뜰에는 분재와 수석이 가득하다.(사진=장태욱 기자)

이 음식점 주변은 백송 등 진귀한 나무와 분재, 수석으로 채워졌다. 기자가 사진을 찍으려니 김영란 대표가 요리를 하다말고 사진이 잘 나오는 위치까지 알려준다. 나무와 분재, 수석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김영란 대표는 “내가 분재와 수석 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동했는데,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참지 못해 사서 모았고, 모으다 보니 뜰을 가득 채우게 됐다”라고 말했다.

모처럼 토종닭 백숙으로 배를 채우고, 분재와 수석을 보며 눈요기를 했다. 그리고 당유자가 발하는 빛깔에선 옛 선비의 시상까지 떠올렸다. 서귀포의 가을은 당유자의 빛깔만큼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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